[Why] “개 코는 못 속여” 탐지견의 세계
“폭발물·마약·돼지고기… 귀신같이 찾아낸다고요 생후 8주부터 핸들러에게 맡겨져 훈련 받은 덕분이죠”
김영민 기자 now@chosun.com 입력 : 2007.11.09 23:26 / 수정 : 2007.11.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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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에 개가 들어왔다. 문화재청은 “광복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목조 건축물을 해치는 흰개미를 퇴치하기 위해서다. 문화재 보존에 동물이 이용되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생명은 31일 흰개미를 박멸하기 위해 탐지견 2마리를 문화재청에 지원하기로 하고, 31일 오전 경복궁 근정전 주변에서 시연(試演)을 벌였다.
(본지 11월1일자 보도)
지난 5일 인천 영종도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 교관과 1대1 매칭이 된 탐지 훈련견 4마리가 실외 자갈 교장 위로 한 마리씩 올라섰다. 이날은 16주차 교육중 7주차 교육이 처음 실시되는 날이었다. 4마리 모두 품종은 ‘래브라도 레트리버’였다.
훈련견들은 99㎡(30여평) 넓이의 교장에 놓인 20개의 플라스틱 박스를 하나씩 냄새 맡았다. 이후 약속이나 한 듯 4마리 모두 하나의 박스 앞에서 멈춰 섰다. 부동자세로 앞 다리 세우고 앉아 시선은 고정됐다. 교관이 박스를 열자 안에는 둘둘 말아놓은 하얀색 수건 하나가 보였다. 이를 덥석 물은 훈련견은 꼬리를 흔들며 천방지축으로 교장을 뛰어다녔다. “옳지 옳지.” 이어지는 교관의 칭찬과 쓰다듬음. 교관은 개들이 찾은 수건이나 고무공을 ‘더미’(dummy·개의 노리개)라 부른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수건을 좋아하게 교육시키고, 이것을 찾고 가지고 노는 것을 보상으로 느끼게끔 하는 거죠. ‘더미’를 마약과 함께 밀봉해 냄새를 배게 한 다음, 마약 냄새를 탐지하면 곧 ‘더미’가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훈련시킵니다.”
- # 생후 1년 지나면 14~16주 교육 돌입
탐지견이란 냄새를 맡아 특정한 대상물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주는 사역견이다. 안내견, 인명구조견, 수색견 등 다른 특수 목적견과 달리 폭발물, 마약, 쇠고기, 돼지고기, 육포, 녹용, 인삼 등 특정 대상물을 탐지해내도록 훈련받은 개다. 그런데 어떤 개들이 어떻게 탐지견이 되는 걸까?
탐지견은 군과 경찰, 세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에서 육성, 활용한다. 군과 경찰은 ‘폭발물’ 탐지견을, 세관은 ‘마약’ 탐지견을, 검역원은 ‘농수축산물’ 탐지견을 독립적으로 운용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1981년 육군, 1983년 서울경찰특공대의 폭발물견을 시작으로 1989년 관세청이 마약견을, 2001년 검역원이 검역견을 도입했다. 교관은 최초 영국, 호주, 미국 등지에서 연수한 몇 명이 국내로 돌아와 후배를 양성하는 방식을 취했다. 현재 각 기관마다 소속 핸들러(handler·개를 전문적으로 교육, 관리하는 사람)를 두고 있으며, 국외 기관과도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탐지견은 국가 기관만의 영역은 아니다. 사기업인 삼성생명이 2003년 탐지견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30여 마리의 탐지견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에 문화재청에 기증한 흰개미 탐지견 역시 마약, 폭발물 탐지견으로 훈련시키던 개 두 마리를 흰개미 탐지견으로 6개월 동안 재교육시킨 것이다.
탐지견으로 활용하는 개는 셰퍼드, 래브라도 레트리버, 잉글리쉬 스프링거 스파니엘, 비글 등 몇몇 품종에 국한된다. 생김새부터 안면부로부터 코가 많이 돌출돼 후각 세포가 발달한 개여야 하며, 선천적으로 활동적이고 음식물이나 사물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집중력을 지녀야 한다. 또,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공격적이어선 안 된다. 차량이동 후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야 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가벼운 멀미증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삼성생명탐지견센터 최경훈 팀장은 “탐지견은 일을 즐길 수 있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 개여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한 주인만 따르고 놀이에 쉽게 싫증 내는 진돗개 같은 개는 부적합하다”고 했다.
# 훈련받은 개의 10~20%만 탐지견 인정
탐지견 교육은 기관에 따라 14~16주 정도. 생후 1년 정도 된 개에게 냄새가 강한 것부터 약한 것 순으로 탐지물을 바꿔가며 교육시킨다. 마약견의 경우, 쉽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대마초부터 해시시, 헤로인, 코카인을 거쳐 미세한 냄새를 맡아야 하는 필로폰으로 훈련 강도를 높여나간다.
검역견 역시 탐지 대상물로 사용하는 육포의 양이나 이를 담는 짐 가방의 밀도를 조절해 탐지 능력을 성숙시킨다. 흰개미 탐지견은 왕개미나 곰개미를 함께 놓고 교육시켜 흰개미에만 반응을 보이도록 훈련시킨 개다.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 박창열 교관은 “소량의 마약을 옷이 가득 담긴 하드케이스 가방에 넣고, 이를 나무로 짜서 포장하면 미세한 냄새조차 잘 나지 않는다”며 “그래도 그것까지 맡을 수 있어야 탐지견으로 현장에 보낼 수 있다”고 했다.
- 탐지견 훈련에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자견(子犬) 교육이다. 보통 생후 8주가 지난 강아지는 핸들러에게 맡겨져 매주 낯선 사람, 낯선 환경에 놓인다. 선천적인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몇 주간 지속적으로 지켜보면서 친화력, 적응력이 떨어지는 개들은 중도 탈락한다. 보상 수단인 ‘더미’ 또는 먹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개들 역시 탈락 대상이다. 탈락한 개들은 일반인에게 분양된다.
선발된 개들은 6개월부터 1년 정도 지나면 탐지물품의 고유 냄새와 이에 대한 반응방법을 교육받는다. 하루 4~5시간 탐지 대상을 찾고,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만 보상을 하는 방식으로 반복 교육이 실시된다. 마지막 2~3개월간은 현장에 배치돼 실제 상황에서의 응용훈련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개가 훈련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경우 2~3주 정도 재교육을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또다시 탈락 대상에 오른다. 결국 탐지견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개는 훈련 대상견 중 10~20% 수준.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탐지견을 시장에서 사고팔 수는 없지만 최소 5000만원에서 1억원은 책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핸들러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개들에게 업무는 곧 놀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장에서 개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행위는 상상할 수도 없다. 시간을 두고 계속되는 교정과 보상을 통해 탐지를 ‘즐기게’ 만들어야만 한다. 핸들러가 과격하게 다룰 경우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업무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것이 모든 교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더미’나 보상 먹을거리를 좋아하게 만들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교습 방법이다.
# 개에게 업무는 놀이… 즐기게 해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탐지센터 김홍범 교관은 “과거 시골에서 개를 키우는 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선 개는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사람이 개를 때리면 개는 사람 눈치만 보게 되고, 탐지견은 특히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간혹 주의를 주기 위해 개가 가장 민감해 하는 목덜미 부위를 어미 개가 물듯이 손가락을 펴서 죄는 경우는 있어도, ‘사람의 방식’으로 개를 다루진 않는다”고 했다.
탐지견은 견성(犬性)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주인만 바라보게끔 교육시키지 않는다. 하나의 ‘장비’ 개념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복종 훈련은 시키지만 대상물 탐지에 실패해도 핸들러가 인상을 쓰거나 목줄을 잡아당기는 법은 없다. 견성 유지를 위해 야산에서 훈련을 시키고, 6만여㎡(2만여 평)의 교장에 30~40마리만 교육해 개들의 공간을 확보한다. 실내 교육이 이뤄지면 교육 후에는 실외 교장에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운다. 목욕도 적게는 한 해에 한두 차례, 많아도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씻긴다. 삼성생명탐지견센터 박남순 핸들러는 “발정기 때 교육이 안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은 실시한다”며 “하지만 이외 전 과정에서 자율성을 지니도록 실내외 훈련 환경을 마련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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